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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리얼리즘 영화라고 일컫는 《인생》의 줄거리, 인물, 감독과 배우, 평가

by 영화를 좋아하세요?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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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活着, 1994)
《인생》(活着, 1994)

 

장예모 감독의 《인생》(活着, 1994)은 중국 리얼리즘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작은 여화(余华)의 소설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시대와 개인의 관계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리얼리즘의 특징인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중국 현실의 꾸밈없는 일상과 인물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인물의 내면 변화와 가족의 해체, 생존을 위한 투쟁이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지면서 관객은 시대의 무게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특히 푸구이 가족의 삶은 개인이 체제 속에서 얼마나 쉽게 소외되고 상처받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민중사다. 《인생》은 특정 정치적 주장보다,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리얼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줄거리

주인공은 푸구이(福貴)라는 남자다. 그는 젊은 시절 지주 집안의 아들로, 돈과 여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 자전(家珍)은 아이를 데리고 그를 떠난다. 푸구이는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은 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전은 그를 용서하고 다시 가족이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려는 이 가족의 앞엔 시대의 거대한 격랑이 닥친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벌어지고, 푸구이는 우연히 국민당 군대에 끌려가 징집된다. 전쟁 후 간신히 살아 돌아오지만, 그사이 중국은 공산당 집권 체제로 재편되고 있었다. 지주의 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소박하고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의 아들 요칭(有慶)은 매우 총명하고 바른 소년이다. 그러나 대약진운동 기간에 철강 생산을 위해 밤새 일하던 인민들이 탈진하는 과정에서, 푸구이의 아들은 안타깝게도 병원에서 피를 수혈하다가 사망하게 된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의료 체계가 엉망이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이 낳은 비극이다.

이후 가족은 딸 펑샤(鳳霞)와 함께 살아가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펑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지녔지만 밝고 씩씩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후에 혁명군 출신의 청년 런샤오(二喜)와 결혼하며 새 삶을 꿈꾸지만, 출산 도중 산부인과의 무지한 의사들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이 또한 인재(人災)였고, 체제가 인간을 짓밟는 현실을 상징한다.

영화는 이렇게 푸구이 가족의 비극을 통해 정치, 체제, 혁명의 이름 아래 벌어졌던 민중의 고통을 말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푸구이는 언제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버티고 또 버틴다. 말없이 인형극을 하며 사람들과 웃고 울고, 무엇보다 남은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이 영화는 어떤 이념이나 체제를 비판하기보다, 인간 자체의 존엄성과 생존 본능에 집중한다.

 

등장인물

푸구이(福貴) : 이야기의 중심인물.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허영 많던 청년이었지만, 인생의 풍파 속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아버지로 변모한다. 무력하고도 다정한 아버지로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자전(家珍) : 푸구이의 아내. 인내심 있고 강인한 여인으로, 남편의 방탕으로 고생하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침묵과 눈물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요칭(有慶) : 푸구이 부부의 아들. 착하고 똑똑하지만, 사회 체제의 문제로 인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준다.

펑샤(鳳霞) : 푸구이의 딸. 언어장애를 지녔지만 사랑스럽고 강한 인물이다. 후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회적 비극을 겪는다.

 

장예모 감독

장예모(张艺谋)는 1950년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영화 인생만큼이나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그는,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농촌에 하방(下放)되기도 했던 그는, 젊은 시절에는 방직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영화에 깊은 사실성과 인간적 서정을 담는 밑거름이 되었다.

1982년, 장예모는 베이징 영화학원을 졸업하며 본격적인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촬영 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1987년 자신의 감독 데뷔작 《붉은 수수밭》(Red Sorghum)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국두》, 《홍등》, 《패왕별희》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중국 사회의 전통과 모순, 권위주의적 체제 속 개인의 삶을 예리하게 파헤쳐왔다.

그의 1994년 작품 《인생》은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인간의 생애를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비극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생명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장예모는 이 영화로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주연 배우 거청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예모는 사회비판적 시선을 가진 작가주의 감독이면서도, 동시에 대중성과 미학을 겸비한 연출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특히 중국 전통 색채를 살린 강렬한 미장센,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 구성, 체제와 개인 사이의 긴장감을 예리하게 풀어내는 연출력으로 명성이 높다.

오늘날에도 그는 《영웅》, 《연인》, 《진시황릉의 미녀》 등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장예모는 단순한 영화감독을 넘어, 현대 중국 문화의 흐름 속에서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거장이라 할 수 있다.

 

배우

갈우(葛优, Ge You, 푸구이 역) : 거청은 1957년 베이징 출신의 배우로, 《인생》에서 주인공 푸구이 역을 맡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원래는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배우였지만, 이 작품을 통해 드라마 장르에서도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이며 연기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다.

그는 푸구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 남성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가족을 잃고 다시 살아가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가산을 탕진한 허세 가득한 청년에서 시작해, 인생의 고통을 하나씩 겪으며 변해가는 중년의 모습까지, 거청은 마치 푸구이 그 자체가 된 듯한 몰입감을 준다. 그의 연기는 감정의 과잉 없이도 충분히 관객의 심금을 울릴 만큼 절제되고 진실했다.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 작품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거청은 《건축학개론》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기에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륜’이 담겨 있다.

공리(巩俐, Gong Li, 자전 역) : 공리는 1965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났다. 베이징 중앙희극학원을 졸업하고 장예모 감독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장예모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홍등》, 《국두》, 《패왕별희》 등에 출연했고, 《인생》에서는 푸구이의 아내 자전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자전은 남편의 방탕으로 가족이 무너질 뻔한 위기를 겪지만, 다시 돌아와 가족을 이끌며 묵묵히 버티는 인물이다. 공리는 이 캐릭터를 통해 내면의 슬픔과 강인함, 그리고 말 없는 헌신을 절제된 감정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했다.

공리는 이후 헐리우드 진출에도 성공하며 《메모리즈 오브 어 게이샤》, 《마이애미 바이스》 등에 출연했다. 중국 내에서는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고 있으며, 국제 영화제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연기력을 입증하고 있다.

 

평가

《인생》은 장예모 감독이 1994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중국 현대사의 거대한 격변기를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잔잔하게 풀어낸 영화다. 이 영화는 정치적 구호나 거창한 담론 없이도, 시대가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사적으로 이 작품은 제5세대 중국 감독들이 국제 영화계에 강하게 인식되던 시점에 나온 대표작이다. 《인생》은 199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주연을 맡은 거청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세계 영화계는 장예모의 연출이 보여주는 시각적 미장센뿐 아니라, 중국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는 진중한 시선에 주목했다.

특히 이 영화는 중국 정부의 검열로 인해 본토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중국 현실을 가장 진솔하게 담아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각적 자극보다 인물의 감정과 삶의 무게에 집중한 연출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중국 현대사적으로 《인생》은 단지 한 가정의 비극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20세기 중반 중국 민중이 겪은 집단적 경험을 상징한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까지, 푸구이 가족의 삶은 그 모든 시대의 풍랑 속에 놓여 있다. 영화는 거창한 정치적 비판 없이도,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잃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시대를 이기고, 이념을 넘어서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그 진실을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리뷰 쓰고 난 소회

《인생》은 중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인간을 미화하고 체제에 대한 비판을 희석했다고 본다.  푸구이가 겪는 고난은 실상 순한 맛이며 오히려 체제 순응형 인간상을 이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같은 비극적 사건들도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만 표현되어, 그 현실의 참혹함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관객에게 역사적 고통의 본질보다 인생을 만만디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서사 구조다. 영화는 리얼리즘이라기 보다는 역경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 자체를 미화하는 낭만적인 방식으로 귀결된다. 중국에서 리얼리즘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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