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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보조금과 의지가 자수성가의 바탕이 된다, 윌 스미스의 《행복을 찾아서》

by 영화를 좋아하세요? 202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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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 2006) official film poster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 2006)

 

들어가는 말

거친 세상의 풍랑 속, 한 가장은 명예를 잃고 가난의 진창 속에 무릎을 꿇는다. 벽에는 청구서가 가득 찢기고, 저녁엔 따스한 식사보다 아들의 눈망울이 그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운명이란 이름의 수레바퀴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그는 단 하나의 희망을 쥐고 증권회사 문을 두드린다.

긴 인턴십의 나날은 그의 삶을 시험하듯 혹독하도다. 배움은 무급이요, 잠자리는 거리 한편. 그럼에도 부정한 길을 택하지 않으니, 이는 단지 성공이 목적이 아닌,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기 위함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그의 걸음은 더디나 진실하며, 끝내 세상의 시선은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줄거리

세상의 등불이 흐릿해지는 시기, 한 사내가 있다. 이름은 크리스 가드너.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지는 무게보다 더 깊은 짐을 짊어진 자였다. 시대는 변하고, 시장은 냉혹했다. 그가 팔던 의료 장비는 고가이되 효율은 모호했고, 병원들은 더 이상 그의 물건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수입은 줄었고, 삶의 기초는 무너졌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존심의 침식이었다. 어제까지는 가장이었고, 오늘은 빈털터리의 사내였다.

현실은 냉정했다. 아내는 점차 지쳐갔고, 결국 그를 떠났다. 어린 아들 크리스토퍼만이 그의 곁에 남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았고, 사내는 아이에게 절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괴테가 말했듯,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크리스는 바로 그 의미를 위해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고급 정장을 입은 증권 브로커를 목격한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대답은 단순했다. “나는 증권회사에서 일해.” 이 말 한 마디가 크리스에게 불꽃을 남겼다. 그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졸의 학력이지만 그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문제는 뚜렷했다. 인턴십은 무급이고, 생계는 이미 벼랑 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회를 붙잡았다. 6개월간 무급으로 일하며 수십 명의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했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 노숙자 쉼터와 지하철역 화장실을 오가야 했다. 낮엔 브로커의 꿈을 좇고, 밤엔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서 아이를 안고 잠들었다. 그는 묵묵히 버텼고, 단 한 번도 아이 앞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인간의 영혼은 한계 속에서 빛난다. 크리스의 영혼도 그리했다. 그는 인턴 기간 동안 누구보다 많은 고객 전화를 걸고, 빠르게 자료를 분석하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 하루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작은 기회에도 성실을 심었다.
모든 인턴이 정직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크리스를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고, 그는 마치 운명과 거래하듯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턴십의 마지막 날. 상사가 그를 조용히 회의실로 불렀다. 긴 침묵 끝에 단 한 마디. “내일부터 출근하게.” 그 순간, 크리스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더 이상 비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가 세상을 이겨낸 증표였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자신과 아이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자였다. 사회적 실패자라는 낙인조차, 그의 영혼을 꺾지 못했다. 괴테가 갈파했듯,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이겨낸 만큼 세상을 가진다.” 크리스 가드너는 바로 그 진리를 삶으로 증명한 인물이었다.

 

등장인물

크리스 가드너 (Chris Gardner) – 윌 스미스
존재는 필연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한다. 크리스 가드너는 그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가난, 실직, 이혼이라는 현실의 사슬 속에서도 그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삶이란 외부 세계와의 타협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진리를 구현해내는 투쟁이다. 그는 아들을 지키는 사랑을 통해 ‘의지의 자유’를 증명하며, 좌절 속에서도 인간 정신은 존엄할 수 있음을 스스로 체현한다.

크리스토퍼 가드너 주니어 (Christopher Gardner Jr.) – 제이든 스미스
아이의 영혼은 순수하되,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어린 크리스토퍼는 단지 주인공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투쟁에 있어 가장 고귀한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셸링이 말하듯, 진정한 자유는 타자를 위한 책임에서 비롯된다. 아이는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고, 묻지 않고 따라간다. 그의 순응은 나약함이 아닌 신뢰이며, 존재의 가능성을 여는 원초적 희망 그 자체다.

린다 (Linda) – 탠디 뉴튼
린다는 좌절 속에서 무너져버린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녀는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하고, 사랑보다는 생존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악의가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셸링은 악을 인간의 자유의 오용이라 보았으나, 린다의 퇴장은 의지의 부재라기보다 감정과 고통의 피로가 낳은 결과로 이해된다. 그녀는 실패한 존재가 아니라, 탈진한 인간의 상징이다.

제이 트위슬 (Jay Twistle) – 브라이언 호위
제이는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기회의 문을 쥔 자로 등장한다. 그는 냉정한 심사관처럼 보이지만, 결국 크리스의 진심에 반응하는 이성적 관찰자다. 그의 시선은 비인간화된 사회 속에서 ‘진정성’이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는 사회 구조 속에서도 인간적 신념이 작동할 수 있다는 증거이며, 셸링이 말한 ‘이성적 자유’의 상징이다.

마틴 프로먼 (Martin Frohm) – 제임스 카렌
마틴은 제도권의 최상층에 위치한 인물로, ‘기회의 문턱’을 지키는 자다. 그는 선발자이자 평가자이며, 크리스의 운명을 결정짓는 판단자다. 셸링은 신적 인식과 자유의 합일을 말했듯, 마틴은 인간의 능력을 관조하는 자로 등장한다. 그의 한 마디는 인간 의지의 성과를 외부 세계가 수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며, 그 존재는 기회와 구조의 경계에 선 심판자적 형상이다.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Gabriele Muccino)는 196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자율적 이성의 명령에 따라 형성했다. 젊은 시절 문학과 철학, 영상 언어에 몰두하며 그는 인간의 감정과 도덕적 선택을 이야기로 구성하려는 의지를 키웠다. 이는 단지 취미나 욕망이 아니라, 마치 칸트가 말한 바 있는 “정언명령”처럼 내면에서 도출된 필연적 과제였다.

무치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이탈리아 사회 내 가족, 사랑, 소외를 조명한다. 2001년작 《마지막 키스》(L’ultimo bacio)는 그에게 국제적 주목을 안겨줬으며, 인간 관계의 도덕성과 감정 사이의 균형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상업성과 인간 내면 탐구 사이의 조화를 이루려 했으며, 이는 단순한 감정 소비를 넘어 관객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삶의 자세’를 묻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 위에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 2006)가 놓인다. 이 영화는 그에게 있어 실천이성의 연장이자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실증적 사유였다. 미국 프로듀서들은 무치노에게 ‘감정이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원했고, 무치노는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통해 보편적 윤리의 가능성을 시험하게 된다. 인간이 처한 조건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스스로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이성적 희망을 그는 영상으로 구현한다.

무치노는 《행복을 찾아서》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사건을 윤리적 판단의 흐름으로 이끈다. 이는 단지 한 가장의 성공기가 아니라, 실천적 이성이 인간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칸트가 말한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 그리고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 존재를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성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배우

윌 스미스 (Will Smith) :
그는 크리스 가드너 역을 통해 단자(monad)로서의 자율성과 완결성을 구현한다. 외부 원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 질서에 따라 진보하는 존재로서, 그의 연기는 예정조화 속 질서를 형상화한다.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연기로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최선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이든 스미스 (Jaden Smith) :
영화 속 아역이자 실제 윌 스미스의 아들인 그는 유년기라는 독립 단자 속에서도 아버지와의 조화를 이룬다. 그의 존재는 단지 배경이 아닌, 의미 있는 ‘반응’의 세계로서 기능하며 예정조화 속 감정과 신뢰의 중심이 된다. 연기의 진정성은 자연에 가까운 선험적 표현이다.

탠디 뉴튼 (Thandiwe Newton) :
린다 역을 맡은 그녀는 인간 내면의 충돌과 좌절을 생생히 드러낸다. 그녀의 선택은 합리적 예정조화 속에서 분열된 의지의 형태이며, 모든 존재가 최선의 자리에 있다는 라이프니츠적 믿음에 균열을 가한다. 그녀는 이 세계의 불완전함이 내포한 정합성을 몸소 증명한다.

브라이언 호위 (Brian Howe) :
제이 트위슬 역의 그는 세속 구조 내에서 기능하는 중간자 단자로 존재한다. 그는 평가자이자 가능성을 열어주는 조화적 요소로서, 사회적 기회가 인간의 내면 질서와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고리다. 감정은 억제되어 있으나, 실용성과 인간미 사이에서 미세한 긴장을 형성한다.

제임스 카렌 (James Karen) :
마틴 프로먼으로 분한 그는 시스템의 정점에서 존재하는 고등 단자이다. 그의 판단은 단순한 직무가 아닌 예정된 조화 속 ‘인정’의 역할로 작동한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제도적 문턱 사이에서 그 질서를 매끄럽게 관통하며, 극 후반 전환의 결정적 열쇠를 쥔다.

 

평가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단순한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정신이 타자성과 부딪히며 자기 자신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서사로 응축한 형식이다. 이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본질과 현상의 대립 속에서 진실된 감동으로 수렴된다. 다수의 평론은 이 작품이 신파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현실적 비극을 통한 정언적 상승을 보여준다고 평하였다.

윌 스미스는 이 영화로 배우로서의 ‘자기 외화’를 완성했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개체적 정신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또 어떻게 자유를 향한 운동성을 가지는지를 자신의 연기를 통해 증명해냈다. 또한 영화는 MTV 무비 어워드, 틴 초이스 어워드 등에서 다수의 대중적 찬사를 받으며 ‘인정의 순간’을 획득했다.

비평가들은 특히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가 감정의 진폭을 억제한 채 이야기의 필연성을 조직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는 우연과 혼돈 속에서 필연적 구조를 찾아가는 헤겔의 역사철학과도 접점을 이룬다. 가난, 가족, 실패라는 부정의 총합이, 자유와 희망이라는 긍정으로 전개되는 이 변증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사유하게 한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세상이란 원래 불공평하다. 《행복을 찾아서》는 그 자명한 진실을 마치 위로라도 되는 양 아름답게 포장한다. 실직한 가장이 무급 인턴을 견디고 결국 성공한다. 감동적이다. 그렇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그렇게 ‘행복’을 쟁취하지 못한 채 오늘도 전철에서 졸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식 실존이란, 결국 인간이 자기 선택을 통해 존재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크리스 가드너는 선택했다. 처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그 선택은 위대하지만, 동시에 절망적이다. 그는 선택의 자유를 가졌지만, 선택지 자체는 사회가 쥐고 있다. 자유로운 인간이 자유롭지 못한 체계 안에서 싸운다는 건, 아이러니다 못해 잔인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박수 친다. 마치 성공이 도달 가능한 보편 진리인 양. 그러나 이 영화는 결국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비선택된’ 존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실존은 책임이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일이다. 크리스는 감당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감당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비극은, 오히려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실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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