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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사는 것인가, 떠나는 것인가.” 삶의 중심이 무너진 자리에서 펀은 선택의 길에 선다. 붕괴된 경제, 사라진 일터, 그리고 집의 상실은 그녀로 하여금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녀는 낡은 밴에 남은 시간을 싣고 유랑의 길로 들어선다.
광활한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정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닌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왜 어떤 이들은 체계 밖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과연 자유인가 필연인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를 통해 미국 복지의 공백과 자본주의의 불균형을 조용히, 그러나 명확히 비판한다.
펀의 길 위에는 고독이 있으나 절망은 없다. 그녀는 끝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노매드랜드》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현대의 셰익스피어적 응답이다.
줄거리
“그대는 무엇을 믿는가?” 괴테가 파우스트에게 던졌던 이 질문은, 《노매드랜드》에서 펀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통해 다시 묻는다. 경제적 붕괴로 도시가 사라지고, 남편을 잃은 그녀는 삶의 기반을 잃는다. 남겨진 것은 오래된 밴과 유랑의 시간뿐. 펀은 제 발로 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 여정은 도피가 아닌, 존재를 재정의하려는 질문의 행로다.
펀은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마주친다. 자신처럼 집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상실을 품고 있으나 누구도 울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가난하지만, 고요하다. 캠핑장 청소, 아마존 물류센터의 단기직, 도로변 화장실 관리 같은 비정규 노동을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은 복지보다 방임에 가까운 무관심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 여정을 통해 말 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진정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누군가는 집이 없다고 하지만, 펀은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 넓은 하늘 아래 펼쳐진 미국 서부의 풍경은 관습으로 닫힌 삶의 문을 여는 공간이 된다. 가족의 틀도, 사회의 기준도 벗어난 이들은 비로소 존재 자체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낭만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사회는 그들을 안전망 밖에 둔다. 그러나 펀은 끊임없이 묻는다. 떠나는 것이 곧 잃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나를 찾는 방식인가? 《노매드랜드》는 복지의 결핍을 말하면서도, 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깊은 시선으로 조명한다.
괴테식 질문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펀의 눈빛과 정적, 스쳐가는 인물들의 말없는 연대는 묻는다. "그대는, 어떤 삶을 택하겠는가?"
등장인물
펀 (Frances McDormand)
모든 질문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펀은 남편을 잃고, 도시가 무너지자 스스로 길 위로 나선다. 그녀는 사회적 고립 속에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한다. 외부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내면은 단단히 유지한다. 그녀의 여정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셸링이 말한 자연과 자아의 합일을 향한 묵묵한 탐색이다.
데이브 (David Strathairn)
펀이 몇 안 되게 마음을 열었던 남성. 그는 가족이라는 구조 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끝내 펀을 따라가지 않는다. 따뜻하고 배려심 깊지만 자신의 고독은 감춘 채 살아간다. 데이브는 정착과 유랑, 개별성과 소속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며, 공동체와 자유 사이에서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린다 메이 (Linda May)
실제 노매드이자 극 중에서도 자신을 연기하는 린다는 펀에게 삶의 기술과 태도를 가르친다. 그녀는 낙천적인 태도로 불확실한 삶을 견뎌낸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셸링의 관점을 체현하며,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존재는 영화의 현실성과 서정을 동시에 잡아주는 축이다.
스와키 (Swankie)
중대한 병을 앓고 있는 스와키는 펀에게 유랑의 삶이 단지 선택이 아닌 자기 존엄의 표현임을 일깨운다. 그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죽음을 담담히 준비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롭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는, 셸링이 말한 자연의 숭고함과 자아의 해방을 동시에 담는다. 고통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는 힘이 있다.
밥 웰스 (Bob Wells)
노매드 커뮤니티의 중심 인물로, 실존 인물이자 극 중에서도 본인을 연기한다. 그는 체계 밖에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밥은 사회의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사상가이자 실천가다. 개인성과 보편성의 통합이라는 셸링의 철학이, 그를 통해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감독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뉴욕대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그녀는 초기작부터 ‘체계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해왔다. 그녀는 단지 현실을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삶의 윤리를 질문한다.
자오는 데뷔작 《Songs My Brothers Taught Me》(2015)와 후속작 《The Rider》(2017)에서도 미국 원주민 사회와 비주류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그녀는 전통적 내러티브를 벗어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스타일로 인물의 삶을 따라간다. 이 같은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칸트적 질문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매드랜드》는 그 질문의 한 해답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실제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삶의 기반을 잃었다. 자오는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도서를 접하고, 이 안에서 사회의 빈틈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 틈을 메우는 것이 감독의 윤리이자 예술의 책임이라 여겼다. 영화 속 등장인물 다수가 실제 노매드이며,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는 그녀의 철학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자오는 화려한 기술이나 극적 전개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를 통해, 비가시적 존재들의 삶에도 서사가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노매드랜드》는 단지 한 여성의 여정을 넘어, 자본주의 복지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한 인간의 존엄을 되묻는 철학적 작업이다. 자오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에 조용한 빛을 비춘다.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 펀 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현실과 연기를 완전히 일치시킨다. 그녀는 라이프니츠가 말한 ‘조화 속의 개별성’을 구현하며, 한 인간의 고독과 존엄을 묵직하게 표현한다. 절제된 감정과 살아 있는 시선은 영화의 철학적 뿌리를 이끌어낸다.
데이비드 스트라탄 : 데이브 역을 연기한 그는 공동체 안에서의 안식과 독립 사이에서 흔들리는 중년의 남성을 담담히 그린다. 삶의 불확실성과 선택의 윤리라는 테마 속에서, 그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톤으로 전체의 조화를 보완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린다 메이 : 실제 노매드로 출연한 린다 메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평화를 보여준다. 그녀의 존재는 영화 속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인다. 낙관과 회복력의 상징이다.
스와키 : 병을 앓고 있는 스와키는 자율성과 죽음의 존엄을 표현한다. 그녀는 삶의 끝에서조차 자연과 연결되기를 선택하며, 라이프니츠가 강조한 ‘선의 체계’ 안에서 고통조차도 의미를 갖는다는 진리를 조용히 증명한다. 가장 순수한 모나드적 인물이다.
밥 웰스 : 실제 노매드 커뮤니티의 리더로 등장하는 그는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체계 밖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그는, 라이프니츠가 말한 ‘선한 목적을 위한 조화’의 대리자처럼 작용한다. 그의 언어는 현실을 넘어서 공동체적 이상을 상징한다.
평가
역사는 단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정신의 자기 실현이다. 헤겔의 이 명제를 따라가자면 《노매드랜드》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버려진 개인의 영혼이 어떻게 다시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고요한 저항이자 철학적 성찰”이라 평가했다. 특히 펀의 여정은 단순한 노숙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존재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정신의 자기 부정-자기 극복의 형식으로 읽힌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미니멀한 내러티브 안에서 사회 구조의 균열과 인간 존재의 진실을 동시에 담아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94%, 메타크리틱 91점을 기록하며,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적 형식미와 극영화적 감수성의 이상적 합일”로 해석했다. 이것은 헤겔이 말한 ‘예술 속 절대정신의 현현’에 가까운 미학적 결과물이다.
수상 내역 또한 그 정신의 구현 과정을 증명한다.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3관왕을 차지했다. 자오 감독은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라는 역사적 의미를 함께 세웠다. 이는 주류 서사의 변증법적 전환점이자, 시대정신(Zeitgeist)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세상은 그녀를 버렸고,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펀은 시스템이 만든 폐허 속에서 낡은 밴 하나에 존재를 욱여넣고 떠돌기로 한다. 그것이 유일한 자유다. 사람들은 말한다, 저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헛소리다. 선택하지 않았을 뿐 강요된 것도 아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서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저주받은 자유 속에 있다.
클로이 자오의 시선은 친절하지 않다. 그녀는 구제도 하지 않고,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는 묻는다. 이쯤에서,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펀은 울지 않고, 증오하지도 않는다. 떠돈다. 그것이 그녀의 실존이다. 거기엔 정의도, 구조도, 해답도 없다.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유일한 진리다.
《노매드랜드》는 실존의 한복판을 적막하게 보여준다. 펀은 정체성을 외부로부터 얻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없는 아내이며, 직장이 없는 노동자이고, 주소 없는 시민이다. 사르트르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인간은 본질이 아니라 행위로 존재하며, 펀은 그저 매 순간 살아감으로써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고, 국가는 멀고, 복지는 기만적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를 밀어넣을 장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펀은 그것이 밴이라면 밴으로, 길이라면 길로 가는 것이다. 우습게도 그 안에 최소한의 진실이 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 타인의 위선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