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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공평하지 않은 환경에 놓인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춘기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굴레일지도 모른다. 《케스》의 주인공 빌리는 가족에게도, 학교에서도 버림받은 아이다. 그는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매일을 버티며 살아간다.
그런 그가 들판에서 한 마리 새끼 황조롱이를 발견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던 소년이 처음으로 어떤 존재와 교감하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케스’를 길들이는 과정은 빌리가 처음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갖게 되는 경험이고, 이는 곧 자존감의 씨앗이 된다.
하지만 그의 작은 희망은, 계급으로 굳어진 사회 구조와 무관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잔인하게 짓밟힌다. 영화는 이 모든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우리가 외면해 온 아이들의 삶을 질문한다.
줄거리
영국 북부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소년, 빌리 캐스퍼는 열다섯의 나이에 이미 세상의 냉혹함을 너무 많이 배웠다. 집에서는 폭력적인 형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선 선생들마저도 그를 무시한다. 어른들은 빌리를 향해 아무 기대도 걸지 않는다. 그 역시 자신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빌리는 들판에서 우연히 어린 황조롱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는 이 새에게 ‘케스(Kes)’라는 이름을 붙이고, 매사냥을 독학하며 훈련을 시작한다. 가난한 소년이 새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길을 헤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가며 돌보는 과정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처음으로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을 얻은 경험이었다. 케스를 기르며 그는 책임을 배우고, 감정을 나누며,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변화가 생긴다. 한 선생님이 빌리의 이야기를 듣고, 교실 앞에서 자신이 케스를 어떻게 길들이고 있는지 발표하게 해준다. 아이들은 그에게 처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박수를 친다. 그 장면은 짧지만, 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존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쉽게 희망을 주지 않는다.
어느 날, 형이 돈을 훔쳐간 빌리에게 화가 나 보복을 감행한다. 훈련시킨 케스를 죽이는 형의 행위는 단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가난과 억압이 만든 한 인간의 절망이 다른 인간의 희망을 짓밟는 잔인한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빌리의 유일한 빛이던 케스의 죽음은, 그가 다시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케스》는 한 소년의 일상을 통해 계급의 덫에 걸린 삶, 그리고 희망조차 배울 수 없는 교육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소년이 새를 통해 스스로를 찾는 여정은 곧,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외면하고, 가능성을 박탈하는지에 대한 슬픈 증언이 된다.
등장인물
빌리 캐스퍼 (Billy Casper) : 빌리는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며,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를 품고 있는 소년이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자라며,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세상이 말하는 실패자와는 다르다. 황조롱이를 돌보며 보여주는 섬세함과 집중력은, 단지 환경이 빌리를 외면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말수가 적고 고독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묵직한 감정이 살아 있다.
저드 캐스퍼 (Jud Casper) : 저드는 빌리의 형이자, 그가 처한 현실의 가장 가깝고도 잔혹한 얼굴이다. 그는 탄광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술과 분노로 살아간다. 빌리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하고, 결국 케스를 죽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의 행동조차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절망의 부산물처럼 보인다.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운 적 없고,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초상이다. 무지와 분노가 교차하는 씁쓸한 인물이다.
윌킨스 선생 (Mr. Gryce / Headmaster) : 학교 교장인 윌킨스 선생은 권위주의와 냉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빌리를 비롯한 아이들을 통제 대상으로만 여기며, 따뜻한 관심이나 이해는 없다. 그는 말보다 체벌을 앞세우고,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충실한 어른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더 짓밟을 뿐이다. 그는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고립시키는, 구시대적 교육 제도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퍼킨스 선생 (Mr. Farthing) : 퍼킨스 선생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빌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인물이다. 매사냥에 대한 빌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준다. 그는 빌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존중하는 시선을 보낸 경험을 안겨준다. 그의 존재는 미약하지만, 한 아이에게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전하는 희망은 그로부터 살짝 스며든다.
캐스퍼 부인 (Mrs. Casper) : 빌리의 엄마 캐스퍼 부인은 육체적으로는 존재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부재한 인물이다. 그녀는 삶에 지쳐 있고, 아이들을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생존에 급급하다. 자식들과 진심으로 대화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 그녀의 무관심은 빌리에게 또 하나의 상처로 다가오고, 결국 가정이란 울타리가 아닌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한다. 냉소와 무기력이 어우러진 인물로, 영화가 그리는 현실의 차가움을 대변한다.
감독
켄 로치는 1936년 영국 워릭셔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군 복무를 마친 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법조인의 길을 걷기보다는, 사람들의 현실을 더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무대를 택했다. 연극을 시작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거쳐 결국 영화로 나아간 그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오래 귀를 기울였다.
1960년대 중반, 그는 BBC에서 방송된 TV 드라마 《 Cathy Come Home 》 (1966)을 통해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이 작품은 주거 불안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한 여성을 통해 영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고, 실제로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줄 만큼 파장이 컸다. 이때부터 켄 로치의 영화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발언이 되었다.
《케스》(1969)는 그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작가 배리 하인스의 소설 《A Kestrel for a Knave》 였다. 로치는 이 작품을 읽고, "이건 내 영화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빌리 캐스퍼라는 소년이 겪는 삶의 고단함, 학교에서의 소외, 어른들의 무관심은 당시 영국 노동계층 아이들의 현실 그대로였다. 로치는 카메라를 들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로 했다.
그는 프로 배우보다 실제 아이들과 교사, 현지 주민을 출연시키는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이를 통해 영국 교육 제도의 냉혹함과 계급 고착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켄 로치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았다.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졌다. 《케스》는 그런 그의 신념이 가장 뚜렷하게 담긴 작품 중 하나다.
배우
데이비드 브래들리 (David Bradley) : 빌리 캐스퍼 역을 맡은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한 비전문 배우였다. 그럼에도 그의 연기는 거짓이 없었고, 진심에 가까웠다. 자연스러운 말투, 굳은 표정 뒤의 감정, 새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진짜 소년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빌리를 표현해냈다.
프레디 플레처 (Freddie Fletcher) : 형 저드 캐스퍼 역을 연기한 프레디 플레처는 거친 에너지로 인물의 분노와 피로를 그려냈다. 실제로 배우가 아닌 전직 권투선수 출신이었기에, 몸짓 하나에도 삶의 무게가 스며 있었다. 그의 존재는 단지 악역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희생자의 얼굴을 대변하고 있었다.
린 페리 (Lynne Perrie) : 빌리의 엄마 역을 맡은 린 페리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지닌 어머니를 표현했다. 무관심하게 보이지만 그녀 역시 삶에 지쳐 무뎌진 인물이었다. 단순한 냉담함이 아닌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그려내며, 가정 안에서도 아이들이 소외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이었다.
콜린 웰랜드 (Colin Welland) : 퍼킨스 선생 역할을 맡은 콜린 웰랜드는 유일하게 빌리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 어른이었다.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연기로, 관객에게 작은 위로를 전달했다. 교사이지만 권위보다는 공감을 선택한 인물로서, 작품 전체에 숨통을 틔우는 인물이었다.
브라이언 글로버 (Brian Glover) : 폭력적인 체육 교사 역의 브라이언 글로버는 특유의 강한 외모와 억센 발성으로, 냉소적이고 권위적인 교사의 얼굴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실제로도 레슬러 출신이었던 그는, 교실 안에서조차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대의 어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영화의 비판적 시선을 강화했다.
평가
《케스》는 1969년 개봉 당시, 거대한 예산이나 화려한 배우 없이도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영화가 보여주는 진실성이 너무도 날카롭고도 담백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영국 사회의 민낯을 고요하게 꿰뚫는 영화”라 표현했고, 특히 켄 로치 감독의 리얼리즘 연출에 찬사를 보냈다. 감정의 과잉 없이도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는 방식이 탁월했다는 평가였다.
주연을 맡은 데이비드 브래들리의 연기도 큰 호평을 받았다.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그가, 단 한 마리 새를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자 하는 소년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는 점은 평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연기한 빌리 캐스퍼는 이후 영국 영화사에서 가장 현실적인 청소년 캐릭터 중 하나로 기억된다.
수상 경력도 의미 있다. 《케스》는 1970년 영국 영화협회 어워드(British Academy Film Awards, BAFTA)에서 촬영상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평론가협회와 다양한 영화제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특히 1999년, BFI(영국영화협회)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국 영화 100선’ 중 7위에 오른 것은 이 작품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케스》는 고요하게 시작하지만 끝까지 불편함을 안긴다. 빌리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누구도 그를 구원하지 않고, 그 역시 구원받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살아 있는 생명체 하나와 연결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 짧은 순간이 끝나자, 그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의미 없는 하루, 반복되는 굴욕, 부서진 자존감. 여기엔 희망도 성장도 없다.
어른들은 빌리를 향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질문은 거기서 시작돼야 한다. 아이가 노력할 만한 세계였는가? 노력하면 바뀌는 삶이었는가? 《케스》는 그 질문 앞에서 침묵한다. 아니, 애초에 대답 따위 관심 없다. 이 영화는 구원 서사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잔혹하게 인간을 소외시키는지, 감정 없이 드러낸다.
여기서 실존주의가 고개를 든다. 인간은 본질 없이 존재로 던져지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빌리는 새를 선택했다. 그것은 의지였고, 자유였다. 그러나 자유는 무력했고, 세계는 거대했다.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자아’가 여기 있다. 학교, 가정, 거리 — 어디에서도 그는 주체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주체로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던가, 그 선택이 의미가 있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 점이 가장 정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