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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쉘》(Bombshell, 2019)
    《밤쉘》(Bombshell, 2019)

     

    들어가는 말

    폭스뉴스는 미국 보수 언론의 상징이자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매체다. 그 내부에서 오랜 시간 동안 로저 에일스는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는 뉴스 채널의 외양과 메시지를 통제했을 뿐 아니라, 여성 아나운서들의 경력을 미끼 삼아 권력을 남용했다. 언론의 책임은 뒤로 밀리고, 조직은 침묵을 선택했다. 정치권 역시 언론과 유착한 관계 속에서 그를 보호했고, 피해자의 목소리는 번번이 묻혔다.

    그러나 몇몇 여성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가를 감수하고,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렸다. 이들의 용기는 조직 내부에 균열을 만들었다. 처음엔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된 채 시작했지만, 점차 연대의 움직임으로 나아갔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이해관계는 달랐지만, 그들이 공감한 건 침묵이 만든 고통이었다. 진실은 외면당했지만, 이들이 만든 목소리는 결국 조직을 흔들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성추문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성 내부의 갈등과 연대,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말해야만 했던 구조적 현실을 드러낸다. 외모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성과만을 요구하는 조직 문화는 피해자들이 침묵하게 만든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무엇보다 상명하복의 수직 구조는 문제 제기를 원천 봉쇄했다. 조직과 권력, 그리고 언론이 함께 만든 침묵의 카르텔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밤쉘》은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서, 언론과 정치, 사회 전반에 내재한 권력 구조를 되묻는다. 진실을 은폐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그 구조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구조의 민낯을 보여주며, 우리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끝내 묻는다.

     

    줄거리

    폭스 뉴스는 미국 보수 진영의 중심 언론이자 막강한 여론 형성의 도구였다. 이 조직의 수장이었던 로저 에일스는 단순한 경영인을 넘어, 언론과 정치권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여성 앵커들의 외모와 이미지를 조작하며, 그들을 경력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했다. 뉴스의 화면 뒤에선 권력과 젠더의 불균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침묵은 암묵적 규범이 되었다. 상명하복 구조 속에서 피해자는 조직을 위해 침묵해야 했고, 가해자는 권력을 유지했다.

    이 침묵을 처음으로 깬 인물이 그레천 칼슨이다. 해고 이후, 그는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한다. 이 소송은 단순한 법적 대응을 넘어, 내부 고발의 시작점이 되었다. 동시에 간판 앵커였던 메긴 켈리는 내적 갈등에 빠진다. 그녀 역시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했으나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칼슨의 용기에 영향을 받아 결국 본인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더 많은 내부 인물들이 에일스를 고발하는 흐름이 형성된다. 이 일련의 사건은 언론 내부에서 오랫동안 묵인되어 온 성차별 구조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또 다른 인물 케일라는 픽션 캐릭터이지만, 실제 피해자들의 복합적 경험을 반영한다. 신입 직원으로 입사한 그녀는 선망하던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다. 그러나 곧 성적 시선을 견뎌야 했고, 침묵하지 않으면 경력을 잃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는다.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성과 중심주의와 외모 지상주의가 어떻게 여성의 자유를 통제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은 공식적으론 공정함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을 향한 복종만을 요구한다.

    《밤쉘》은 이 세 여성의 서로 다른 위치와 선택을 통해 권력과 침묵의 구조를 파헤친다. 영화는 성희롱 자체보다, 그것이 가능했던 시스템과 조직 문화를 조명한다. 피해자가 입을 열기까지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그 용기가 어떤 균열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가능하게 한 언론과 정치, 자본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등장인물

    그레천 칼슨(Gretchen Carlson) : 폭스뉴스의 전직 인기 앵커였던 그레천 칼슨은 언론 내부에서 지속된 성희롱을 고발한 첫 번째 인물이다. 해고 이후, 로저 에일스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며 폭스뉴스 내부의 침묵과 권력 구조에 공개적으로 맞선다. 그녀는 보수적인 외형 속에서도 강한 내면을 가진 인물로, 행동으로 변화를 끌어낸 상징적 존재다.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선택한 그의 용기는 이후 메긴 켈리와 다른 여성 직원들의 연쇄적인 고발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침묵하던 언론 조직 안에서 소송이라는 수단을 통해 권력에 균열을 낸 그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변화를 이끈 행위자로 그려진다.

    메긴 켈리(Megyn Kelly) : 보수 진영의 대표 뉴스 앵커였던 메긴 켈리는 외부에서는 당당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비춰졌지만, 내면에선 오랜 침묵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과거 로저 에일스에게 성적 요구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으나, 당시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레천 칼슨의 고발 이후, 켈리는 결국 공개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며 또 하나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 그녀는 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쉽게 말할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켈리의 고백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침묵과 타협 사이에서 수년간 스스로와 싸워온 결과였다. 그는 권력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언론인의 복잡한 내면을 대표한다.

    케일라 포스피실(Kayla Pospisil) : 허구의 인물이지만 수많은 실제 피해자들의 경험을 집약한 상징적 존재로, 젊은 신입 직원 케일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흔들리는 인물이다. 그녀는 폭스뉴스 입사를 꿈의 실현으로 여겼지만, 입사 직후부터 상사의 성적 시선과 직장 내 위계 압박에 직면한다. 케일라는 성과 중심적 조직 문화 속에서 자신의 경력을 지키기 위해 침묵할 것인지,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고 맞설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녀는 권력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대의 현실을 대변한다. 외모와 충성심을 요구받는 환경에서, 케일라는 침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젊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압박과 내부적 불안을 세밀하게 담아낸 인물이다.

    로저 에일스(Roger Ailes) : 폭스뉴스의 창립자이자 회장이었던 로저 에일스는 영화에서 단순한 악역 이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수십 년간 조직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 직원들을 성적으로 통제하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조직적으로 차단했다. 에일스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으로 조직 문화를 왜곡시키고 개인의 존엄을 침해한 폭력이 숨어 있었다. 그는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충성을 유도하며, 복종을 미덕으로 만들었다. 언론의 자유와 진실을 외치던 공간은 그의 손에서 사적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는 언론과 정치, 자본이 얽힌 구조적 문제의 중심에 서 있으며, 그 존재 자체가 시스템이 어떻게 특정 인물을 통해 유지되고 악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수잔나(Shayna Tex) : 수잔나는 에일스의 비서로 등장하지만, 단순한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여성 직원들의 외모를 검열하고, 에일스의 지시를 전달하는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수잔나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권력에 동조하며 구조적 가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의 존재는 조직 내 여성 간 연대를 가로막는 현실을 보여준다. 개인의 생존을 위해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은 이 시스템이 얼마나 복잡하고 잔인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잔나는 남성 중심 권력 체계가 여성을 통해서도 작동한다는 점을 드러내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개인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감독

    제이 로치는 1957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USC 영화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연출보다는 기획과 각본에 먼저 참여했다. 그의 커리어는 코미디 영화에서 시작됐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와 《미트 페어런츠》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로치 감독의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 관계의 권력과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영화적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리카운트》와 《게임 체인지》는 미국 정치 시스템의 모순과 선거 과정의 민낯을 그린 HBO 작품으로, 정치 드라마 연출자로서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특히 《게임 체인지》에서 보여준 인물의 심리와 미디어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의 연출 감각에 깊이를 더했다. 이 작품들은 그에게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로치는 정치가 단지 선거의 기술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과 윤리의 싸움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밤쉘》을 연출하게 된 배경에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로치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성추문 재현이 아니라, 언론 내부에 뿌리내린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성과 중심 조직 문화, 외모 지상주의, 상명하복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막았는지에 집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 감독이 대신 말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시선을 구조적으로 따라가는 연출이어야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여성 작가와 여성 촬영감독, 여성 배우들과의 협업을 통해 인물 내면과 조직 구조를 동시에 조망하려 했다.

    로치는 이 작품을 통해 폭스뉴스라는 매체의 특정 이슈를 넘어서, 오늘날 모든 조직에 만연한 침묵과 동조의 문화를 비판하고자 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진실을 가리는 구조에 주목했고,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의 용기를 영화적 언어로 전달했다. 《밤쉘》은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사회적 무게를 가장 깊게 품은 작품이다.

     

    배우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 : 샤를리즈 테론은 메긴 켈리 역을 통해 언론 내부에서 침묵과 타협을 강요받는 여성의 현실을 정교하게 연기했다. 실제 인물과 놀라울 만큼 닮은 분장뿐 아니라, 정치적 보수성과 여성 인권 사이에서 흔들리는 복잡한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테론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전체 방향을 함께 설계했고,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연기 외적으로도 책임을 감당했다. 메긴 켈리가 겪는 자기검열, 조직 안에서의 고립, 그리고 고백의 결단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의 연기는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며 그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권력에 침묵했던 과거와 맞서는 과정을 테론은 외면이 아닌 내면의 갈등으로 밀도 높게 전달했다.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 니콜 키드먼은 그레천 칼슨이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침묵을 깨는 첫 번째 행동에 집중했다. 뉴스 앵커로서의 품위, 해고 후의 분노, 그리고 법적 고발에 이르기까지의 감정 변화를 차분하게 그려냈다. 키드먼은 폭로 이후에도 결코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인물의 단단함을 유지하며, 권위와 고통이 공존하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그레천은 피해자이자 최초의 내부 고발자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며, 키드먼은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듯 차분하고 절제된 연기를 펼친다. 특히 남성 중심 권력 구조 안에서 외롭게 싸우는 여성의 현실을 절박하지 않게, 그러나 절실하게 전달하는 표현력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정제된 감정 연기를 통해 극의 도입부터 긴장을 이끌었다.

    마고 로비(Margot Robbie) : 마고 로비는 허구 인물 케일라 포스피실을 통해 젊은 여성 직원이 경험하는 침묵과 강요, 자기검열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케일라는 실존 피해자들의 복합적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로비는 이 인물을 순수함과 절망, 공포와 저항의 감정으로 채워 넣었다. 로비는 조직 안에서 복종을 강요당하고, 진실을 말할 자유조차 빼앗기는 여성의 무력함을 조용한 눈빛과 억눌린 표정으로 표현해냈다. 캐릭터의 성장 곡선을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끌고 갔고,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이지만 극 전체의 정서적 무게를 뒷받침했다. 특히 수잔나와의 관계를 통해 조직 내부 여성들 간의 미묘한 갈등과 연대 가능성도 함께 드러내며, 구조 속 개인의 고립을 체감하게 했다.

    존 리스고(John Lithgow) : 존 리스고는 로저 에일스를 연기하며 언론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강한 현실감으로 그려냈다. 외형적으로는 특수 분장을 통해 실제 인물에 가까운 모습을 재현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의 심리적 구현이었다. 리스고는 에일스를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권력자로 그렸다. 피해자의 침묵을 유도하고, 조직을 동조의 체계로 만드는 그의 행동은 냉정하면서도 일상적이었다. 연기의 힘으로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고, 동시에 그 불편함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리스고는 강요, 유인, 침묵, 그 모든 과정을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조직 내 권력이 어떻게 일상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줬다.

    케이트 맥키넌(Kate McKinnon) : 케이트 맥키넌은 케일라의 동료 제섭을 연기하며 조직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억압을 보여준다. 제섭은 보수적인 뉴스 조직 안에서 성 정체성과 정치적 견해를 숨기고 생존하는 인물이다. 맥키넌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절제하면서도 현실적인 긴장감을 유지해, 단순한 조연을 넘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제섭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 인물은 케일라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조직이 강요하는 동일성과 동조를 체현한 인물이다. 맥키넌은 감정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억압을 눈빛과 대사로 표현해내며, 극 중 가장 조용하지만 뚜렷한 상징성을 가진 캐릭터로 남았다.

     

    평가

    《밤쉘》은 언론과 권력, 성차별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 실화 기반 영화로, 개봉 당시 다양한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는 폭스뉴스 내부 고발 사건을 다루면서, 언론의 기능이 어떻게 침묵과 왜곡 속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메긴 켈리와 그레천 칼슨처럼 실존 인물들의 고뇌와 결단이, 단순한 고발극을 넘어 조직 문화의 본질을 묻는 영화로 평가받았다.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는 각기 다른 세대와 입장의 여성을 표현하며 극에 입체감을 더했다. 테론은 냉정과 흔들림을 오가는 내면 연기로, 로비는 무력감과 각성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구현했다. 키드먼은 조용한 분노와 단단한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줬다. 연기 앙상블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고, 이들의 연기가 영화의 현실성과 도덕적 긴장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이 많았다.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80% 이상을 기록했고, 메타크리틱에서도 연기와 주제 의식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몇몇 평론가들은 이야기 구조가 다소 설명적이고 긴장감이 고르게 유지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실화 재현과 구조적 메시지 전달에서는 강한 신뢰를 보냈다. 특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침묵을 강요받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영화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수상, 여우주연상(샤를리즈 테론)과 여우조연상(마고 로비) 부문 후보에 올랐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세 배우 모두 후보로 지명됐고, 미국 배우조합상(SAG), BAFTA, 크리틱스 초이스 등에서도 연기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분장은 실제 인물의 외형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화제가 되었고, 메긴 켈리 역의 테론은 그 유사성만으로도 강한 몰입감을 이끌어냈다. 수상 성과보다도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사회적 담론을 촉발하고, 직장 내 권력 구조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밤쉘》은 침묵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말하는 순간 커리어가 끝날 걸 알면서도 입을 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실존의 선언이다. 이 영화는 여성의 고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인간의 서사다. 조직이 정한 성공의 룰, 예쁨과 순종이라는 기대, 이 모든 걸 깨부수는 건 화려한 대사도, 정의감도 아니다. 그냥 “내가 나로 살겠다”는 결심 하나다.

    사르트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기억하라, 너는 네가 선택한 대로 존재한다’고 했을 거다. 영화 속 인물들은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타인의 시선을 기준 삼지 않는다. 그게 실존이다. 연대는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조차 권력의 위치는 다르다. 영화는 그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모두가 착하지 않고, 모두가 옳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선택하지 않으면, 시스템의 부속품이 된다는 거다.

    한국 사회라고 크게 다를 게 있나. 여기도 회의실엔 침묵이 권력이 되고, 진실은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에 묻힌다. 연대를 말하면 튀는 사람, 침묵하면 살아남는 사람. 누구나 자유를 원하지만, 책임은 피한다. 말은 많지만 말할 자유는 없다. 대기업부터 언론까지, 진실보다 이미지를 선택하고, 부조리를 견디는 걸 능력이라 포장한다. 실존은 없다. 대신 정답만 있다. 그리고 그 정답엔 늘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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