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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더》 여성 정치인 성적 스캔들로 본 미국 정치 위선과 민주주의 붕괴

영화를 좋아하세요? 2025. 9. 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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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더》(The Contender, 2000)
《컨텐더》(The Contender, 2000)

들어가는 말

영화 《컨텐더》(The Contender, 2000)는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며 여성 정치인을 향한 차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여성 부통령 후보에게 과거의 성적 스캔들이라는 올가미가 드리워지고, 그것은 곧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남성 정치인에게는 쉽게 묻히는 일들이 여성에게는 씻을 수 없는 낙인으로 남는다. 이 불평등은 단순한 사생활 논란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왜곡을 증명한다.

청문회장은 진실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전장이 된다. 언론은 사실을 추구하기보다 선정적 제목과 자극적 장면에 매달린다. 권력자들은 이 과정을 즐기며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을 채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을 위한 제도라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권력 지키기의 도구로만 사용된다.

여성 정치인은 침묵과 저항 사이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켜야 했다. 그녀는 사생활을 설명하지 않고 원칙을 붙든다. 그 선택은 불편했지만, 오히려 진정한 용기를 증명한다. 정치는 능력과 비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선언은 분명했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의 벽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가 맞서는 벽은 단순한 상대 의원이 아니라 제도의 뿌리 깊은 위선이다. 언론과 정치, 그리고 대중의 호기심이 하나로 얽혀 자유와 평등을 왜곡한다. 이 모든 과정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컨텐더》는 정치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미국 정치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고발한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도덕적 잣대는 성별 불평등의 거울이다. 마녀사냥식 공격은 언론의 장단과 결탁하며 권력의 무기로 변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민주주의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캔들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날카로운 기록이다.

 

줄거리

영화 《컨텐더》(The Contender, 2000)는 부통령 공석을 채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대통령은 여성 상원의원을 차기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새로운 역사를 열려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선택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후보의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라 과거의 사생활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잣대는 가혹하게 들이밀어지고, 성적 스캔들이라는 흉기가 청문회의 무기로 변한다.

청문회는 진실을 향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마녀사냥의 무대가 되고, 증거보다 의혹이 먼저 언론에 퍼진다. 기자들은 사실보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매달리고, 헤드라인은 여성 정치인의 명예를 짓밟는다. 그녀의 과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지키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정치적 계산이다. 그 계산 앞에서 민주주의는 조용히 침묵한다.

후보는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얻지만, 선택은 침묵이었다. 그녀는 사생활을 변명하지 않으며, 자신이 평가받아야 할 기준은 오직 능력과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 태도는 때로는 오만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남성 정치인이 같은 의혹에 휩싸였다면, 언론은 오래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정치인에게는 용서가 없었다.

의원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들은 마치 도덕의 수호자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흉기다. 언론은 이 장면을 중계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팔아넘긴다. 대중은 진실보다 스캔들을 소비하며, 결국 권력의 무대는 희생양을 요구한다.

이 영화는 정치 제도의 허약함을 폭로한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말하지만, 현실 속 민주주의는 불평등의 그림자를 숨기지 못한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이중적 도덕은 제도의 위선을 비춘다. 언론의 선정성과 결탁한 마녀사냥은 제도를 지키기보다 타락시킨다. 결국 민주주의는 권력의 방패로 변질된다.

《컨텐더》의 줄거리는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서사다. 청문회라는 제도적 절차가 진실보다 권력의 계산에 봉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성 정치인의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저항이었고, 그 저항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그 가치가 얼마나 취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미국 정치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비판한다. 여성에게 들이대는 이중 잣대는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조롱한다. 마녀사냥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지키는 수단일 뿐이다. 언론은 정의를 외치지만, 결국은 권력의 언어를 따라간다. 《컨텐더》는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이 줄거리는 한 정치인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 전체의 초상이다. 그녀가 맞서는 것은 상대 의원이 아니라 제도 그 자체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위선의 무대에 참여하고 있는가.

 

등장인물

레인 핸슨(Laine Hanson) : 그녀는 대통령이 지명한 여성 부통령 후보로, 과거 대학 시절의 성적 스캔들 의혹으로 청문회장에서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사생활을 해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녀의 신념은 권력자들이 조롱하는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울린다. 남성 정치인에게는 결코 요구되지 않는 도덕적 순결이 그녀에게만 강요된다. 그녀의 모습은 여성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 정치의 위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는 정책과 비전으로 평가받기를 원하지만, 제도는 끊임없이 사생활을 들추며 그녀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 강인한 침묵과 원칙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의 상징으로 남는다.

잭슨 에반스(Jackson Evans) :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통령으로, 여성 부통령 후보를 지명함으로써 진보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선택 뒤에는 정치적 계산도 숨어 있다. 그는 한순간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권력 유지와 여론의 압력 앞에서 때로는 흔들린다. 그의 유머와 따뜻한 태도는 대중의 호감을 얻지만, 그 웃음 뒤에는 차가운 정치적 현실이 숨어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균형을 고려하며 움직인다. 그의 태도는 정치 지도자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쉽게 타협하는지를 보여준다. 에반스는 민주주의의 얼굴이지만 동시에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셸리 런플로(Sheldon Runyon) : 그는 보수적 하원의원으로, 여성 후보의 발탁을 끝까지 저지하려 한다. 그는 청문회를 이용해 과거의 성적 스캔들을 증폭시키며 정치적 무기를 만든다. 그의 언어는 정의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위한 흉기다. 그는 마녀사냥식 공세의 선봉에 서서 언론과 결탁하며 공격을 퍼붓는다. 런플로의 집착은 여성에게만 가혹한 이중 잣대를 강화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권력 지키기를 위한 위선적 행위만 반복한다. 그의 집요한 태도는 정치의 타락을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얼굴이다.

제프리 웹스터(Jeffrey Webster) : 그는 젊고 이상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청문회의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도 합리와 원칙을 지키려 한다. 그는 여성 후보가 평가받아야 할 기준이 능력과 정책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다. 하지만 제도의 흐름은 그의 목소리를 작게 만든다. 그는 청문회가 권력 싸움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며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체감한다. 그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합리적 목소리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무력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몸소 드러내며, 제도적 한계가 개인의 신념을 얼마나 쉽게 묵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약자를 어떻게 외롭게 만드는지를 드러낸다.

케빈 키드리치(Kermit Cole/일부 자료에서는 Kevin Kitteridge로도 언급) : 그는 언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사건을 사실보다 자극적으로 다루며 대중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그는 정치인의 과거보다 선정적인 이야기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보도는 청문회를 권력 검증의 장이 아니라 스캔들의 쇼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권력자들의 마녀사냥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실을 전하는 기자라기보다는 흥행을 좇는 상인에 가깝다. 그의 모습은 언론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시민은 진실 대신 왜곡된 이미지를 소비하게 된다.

 

 

감독

로드 루리(Rod Lurie)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군 복무 후 언론계에 들어서며 영화 평론가와 기자로 활동했다. 평론가 시절 그는 정치적 이슈와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썼다. 영화보다 현실 정치의 모순을 더 가까이서 목격하며 그는 언젠가 카메라로 이 모순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영화인으로 성장한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의식을 예술로 전환한 과정이었다.

루리는 방송 기자로 일하며 미국 정치의 위선을 반복적으로 체험했다. 그는 언론이 어떻게 권력과 결탁하고, 스캔들을 소비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지 직접 지켜봤다. 기자로서 그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권력자들의 말 속에서 사라졌다. 이 경험은 그에게 정치 영화의 필요성을 깊이 새겨주었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상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자주 무너지는 것을 기록하려 했다.

그의 영화적 여정은 기자에서 감독으로의 과감한 전환으로 시작됐다. 그는 언론에서 느낀 한계를 영화라는 예술로 풀어내려 했다. 현실 정치는 너무 자주 진실을 외면했고, 언론은 그 외면을 팔아넘겼다. 루리는 이 구조를 정면으로 드러낼 도구로 영화 카메라를 선택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권력의 위선과 제도의 허약함을 서사로 바꾸었다.

《컨텐더》(The Contender, 2000)는 그의 문제의식이 응축된 작품이다. 여성 정치인에게만 가혹한 도덕 잣대가 적용되는 현실은 그가 오랫동안 지켜본 미국 정치의 한 단면이었다. 그는 언론의 선정성과 권력의 결탁을 목격했고, 이를 영화 속 청문회 장면으로 형상화했다. 실제 정치 현장에서 반복되는 마녀사냥식 공세는 그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는 진실을 위한 제도인가, 아니면 권력을 지키는 방패인가.

루리는 이 영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여성 부통령 후보를 중심에 두어 성별 불평등과 권력의 위선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는 미국 사회가 여성에게만 순결을 요구하고, 남성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구조를 드러냈다. 그 모순은 단순히 개인의 스캔들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선이었다.

그의 연출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정치적 고발에 가깝다. 루리는 언론이 진실을 비추기보다 스캔들을 팔아넘기는 모습을 고발했다. 그는 기자 출신으로서 언론의 변질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언론인을 비판적 인물로 그리며 제도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드러냈다. 그의 카메라는 권력의 얼굴과 언론의 손길을 동시에 비춘다.

루리가 이 영화를 감독하게 된 계기는 정치와 언론 속에서 체험한 위선의 누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격담을 영화로 전환했고, 허구의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진실을 폭로했다. 그는 여성 정치인의 이야기를 통해 민주주의의 취약한 기반을 드러냈다. 그는 성적 스캔들이라는 사소한 도구가 어떻게 정치적 무기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루리의 삶과 영화는 분리될 수 없다. 그는 기자로서 정치의 위선을 기록했고, 감독으로서 그 기록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증언이었다. 그는 《컨텐더》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응시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했다.

루리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술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고발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영화라는 도구로 권력의 허위와 언론의 위선을 드러냈다. 그는 여성 정치인의 침묵과 원칙을 통해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가치가 얼마나 자주 짓밟히는지를 고발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위선의 무대에 참여하고 있는가.

 

배우

조안 알렌(Joan Allen) : 그녀는 여성 부통령 후보 레인 핸슨 역을 맡아 영화의 중심을 지탱한다. 알렌은 차분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연기를 통해 침묵의 힘을 보여준다. 그녀의 눈빛은 해명 대신 원칙을 붙드는 의지를 드러낸다. 청문회 속 마녀사냥은 그녀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알렌의 연기는 오히려 그 폭력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여성 정치인에게만 강요되는 도덕적 잣대를 뚜렷이 몸으로 표현한다. 정치적 공격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인물의 힘을 배우의 존재감으로 증명한다. 그녀의 연기는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묻는다.

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 : 그는 대통령 잭슨 에반스 역을 맡아 권력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지도자의 초상을 보여준다. 브리지스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정치적 계산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연기는 권력자가 이상을 말하면서도 현실의 타협에 굴복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그는 때로는 지지자로, 때로는 정치적 이해타산가로서 변주를 보여준다. 브리지스는 권력의 언어가 어떻게 포장되고 왜곡되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는 민주주의의 얼굴을 가진 권력자의 이중성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그의 존재는 영화 속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게리 올드만(Gary Oldman) : 그는 하원의원 셸리 런플로 역을 맡아 냉혹한 공격자의 얼굴을 그린다. 올드만은 청문회를 무대 삼아 마녀사냥을 선도하는 정치인의 언어를 폭로한다. 그의 연기는 정의를 말하는 듯하지만 권력에 집착하는 위선자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는 여성 정치인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청문회를 조롱의 장으로 만든다. 올드만은 집요한 시선과 날카로운 어조로 정치의 타락을 상징한다. 그의 캐릭터는 민주주의가 권력 지키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압축한다. 그는 악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로 영화의 긴장을 주도한다.

크리스찬 슬레이터(Christian Slater) : 그는 젊은 정치인 윌리엄 핸슨 역을 맡아 제도 안에서의 이상주의를 보여준다. 슬레이터는 합리적 태도와 진실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며 영화에 균형을 제공한다. 그는 청문회가 권력 싸움으로 변질되는 현실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그의 연기는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와 현실의 차이를 상징한다. 슬레이터는 젊음의 열정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결국 제도의 벽 앞에서 좌절한다. 그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영화가 단순한 스캔들 드라마를 넘어 제도의 문제를 말하는 데 힘을 더한다.

샘 엘리어트(Sam Elliott) : 그는 대통령의 수석보좌관 키너 역을 맡아 권력의 내밀한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엘리어트는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와 무게감 있는 연기로 권력 내부의 긴장을 표현한다. 그는 대통령과 후보 사이에서 때로는 중재자로, 때로는 현실주의자로 움직인다. 그의 캐릭터는 권력이 어떻게 타협과 계산으로 굴러가는지를 드러낸다. 엘리어트는 권력의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거래의 냉혹함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그의 연기는 영화에 묵직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권력의 계산에 얼마나 쉽게 종속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존재는 권력의 이면을 가장 진실되게 드러내는 목소리다.

 

평가

영화 《컨텐더》(The Contender, 2000)는 개봉 당시부터 평론가들에게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평론가들은 여성 정치인에게만 가혹하게 적용되는 이중 도덕 잣대를 정면으로 다룬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조안 알렌의 연기는 강인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며 극찬을 받았다. 그녀의 침묵과 단호한 태도는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원칙을 설득력 있게 상징했다.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통령 역할에서 유머와 권력의 모순을 동시에 드러내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연기는 권력자가 이상을 말하면서도 현실의 타협에 흔들리는 인간적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게리 올드만 역시 냉혹한 정치인의 얼굴을 완벽히 연기해 비판적 시선을 강화했다. 그는 청문회의 마녀사냥식 공세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정치의 추악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단순한 스캔들 드라마가 아니라 정치 제도의 허약함을 드러낸 작품이라 말했다. 언론과 권력의 결탁, 그리고 민주주의의 타락을 고발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가 다소 교훈적인 색채를 띠며 인물들의 도식화가 뚜렷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용기는 시대를 앞서간 시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수상 내역에서도 이 작품은 주목을 받았다. 조안 알렌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제프 브리지스 역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며 연기의 깊이를 인정받았다. 또한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여러 비평가 협회에서도 조안 알렌의 연기를 올해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작품은 정치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드물게 여성의 목소리를 중심에 둔 영화로 기록되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민주주의가 과연 진실과 평등을 지키는 제도인지, 아니면 권력을 지키기 위한 연극인지 묻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영화 속 허구에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컨텐더》는 미국 영화계에서 사회적 비판 의식을 담은 정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상업적 성과는 크지 않았지만, 작품성은 꾸준히 재평가되었다. 특히 21세기 초반, 여성 정치인의 부상과 함께 다시 주목받았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예술적 증언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컨텐더》는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지만, 그 가치만은 명확하게 남았다. 그것은 권력의 위선과 언론의 선정성을 고발한 날카로운 기록이었다. 그리고 여성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모순을 똑바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영화 《컨텐더》(The Contender, 2000)는 여성 정치인의 과거를 들춰내며 제도를 장식하는 권력자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정치가 정의를 말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권력 지키기에 몰두하는 냉소적 현실을 드러낸다. 청문회는 진실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라 마녀사냥의 무대가 된다. 언론은 진실 대신 자극을 팔아먹고, 대중은 소비 가능한 스캔들에 몰두한다. 주인공은 해명 대신 원칙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립을 의미한다.

실존주의적으로 보면 그녀는 자유를 강요받은 존재다. 변명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기로 한 건, 선택이자 형벌이었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라는 짐’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녀는 선택의 책임을 홀로 짊어진다. 그러나 이 자유는 사회적 구조가 만든 함정 위에서 주어진 가짜 자유다. 남성 정치인에겐 존재하지 않는 잣대가 그녀를 옭아매고, 결국 그녀의 침묵은 체제의 폭력을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된다.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떠올리면 이 영화는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성별, 출신, 사생활을 도덕의 이름으로 조롱하면서 본질적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국회는 청문회라는 제도를 무기로 상대를 공격하지만, 국민을 위한 질문은 실종된다. 언론은 ‘팩트 체크’보다 ‘썸네일 장사’에 열중한다. 민주주의는 여론이라는 포장 속에서 결국 권력 지키기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힙하고 쿨하게 말하면, 이건 완전히 시스템적 내로남불이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불평등과 편견을 강화한다. 정치인들은 정의를 팔고, 언론은 욕망을 팔고, 대중은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컨텐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미국의 얘기가 아니다. 이 땅에서도 반복되는 위선의 리플레이를 직시하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민주주의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배우인가, 관객인가, 아니면 단순한 상품인가. 그 질문은 불편하지만, 힙하게 받아칠 필요가 있다. 자유를 말하지만 책임은 뒤로 미루는 이 정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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