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저소득 노동자의 빈곤, 중독, 교육 격차 속 성장 이야기
들어가는 말
《힐빌리의 노래》는 한 청년이 자기 자신과 가정, 그리고 뿌리 내린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묻는 이야기다. 영화는 미국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J.D. 밴스가 겪은 혼란과 성장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고, 가족은 반복되는 폭력과 무관심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흔들리는 교육 환경과 무너진 복지 체계, 그리고 세대를 넘는 가난의 굴레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세상 누구보다도 거칠지만 단단했던 외할머니 ‘맘마우’가 있었다. 맘마우는 단호하고 강한 태도로 손자를 지켜냈고, J.D.는 그 사랑 덕분에 예일대 법대까지 갈 수 있었다. 영화는 그가 엄마의 위기 속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선택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중독, 교육, 빈곤, 복지의 문제는 모두 그 개인의 기억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사람의 성공담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계층, 즉 ‘힐빌리’라 불리는 백인 노동자 계층이 얼마나 깊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구석, 교육 기회가 끊긴 골목, 그리고 중독과 트라우마에 무너지는 가족.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구조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시스템적 문제보다는 가족 내에서의 선택과 관계를 더 조명한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무너진 삶을 지탱하는 ‘작은 사랑’과 ‘불완전한 희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이 삶의 무게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담담하게 들려준다.
줄거리
가난은 조용히 스며들어, 한 가정의 일상부터 아이의 미래까지 갉아먹는다. 주인공 J.D. 밴스는 오하이오의 한 작은 마을에서 그런 가난과 함께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약물 중독과 가족 내 갈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무너지기 쉬운 토대 위에 놓인다. J.D.에게도 그 시작은 불공정했고, 세상은 그를 위한 안전망을 준비하지 않았다.
어머니 베브는 간호사였지만, 마약에 손을 대면서 삶이 급격히 무너졌다. 그녀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화를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매번 상처만 남았다. 집은 언제나 불안정했고, 교육은 뒷전이었다. 누군가는 이 모든 상황을 ‘개인의 책임’이라 말하겠지만, 이 영화는 그 말이 얼마나 가볍게 들리는지를 보여준다.
그 와중에 J.D.에게 하나의 등불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외할머니 ‘맘마우’다. 그녀는 욕설도 서슴지 않고, 따뜻한 말 대신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만큼은 손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거칠지만 단호하게, J.D.를 학교에 보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녀는 무너진 가족 속에서도 의지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J.D.는 결국 예일대 법대에 입학했고,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며 자리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성공이 곧 해방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릴 적 폭력과 공포, 무기력한 일상이 다시 떠오르며, 그는 과연 어떤 아들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는 J.D.의 개인적인 성장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땅의 복지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회는 이 가정을 구조하지 않았고, 교육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고, 그 현실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 있었고, 사랑은 작게나마 존재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J.D. 밴스 : 가난과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한 청년이다. 그는 복잡한 가정사와 무너진 교육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예일대 법대라는 문턱까지 나아갔다. 단단한 의지와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현실과 싸워나가는 그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 그가 흔들릴수록, 그의 선택은 더욱 분명해진다.
맘마우(외할머니) : 거친 말투와 불같은 성격을 지녔지만, 가족을 향한 책임감은 누구보다 크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에서 도망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켰고, 손자인 J.D.에게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다. 삶에 지지 않으려는 단호한 태도는, 복지 제도의 빈틈을 스스로 메우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방식이었다.
베브(엄마) :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약물 중독과 감정 기복으로 인해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녀는 사랑을 줄 줄 알았지만, 그 사랑은 매번 파괴적으로 흘러갔다. 자신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이 인물은, 사회가 놓친 개인의 슬픈 초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린지(누나) : 가족 안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 인물이다. 그녀는 엄마의 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했고, 동생인 J.D.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뒷받침했다. 감정 표현이 크진 않지만, 실질적인 행동으로 가족을 보듬는 모습이 인상 깊다. 분노 대신 인내를 택한 그녀의 존재는 이야기 속에서 작지만 강한 울림을 남긴다.
우쇼(할아버지) : 극 중 비중이 크진 않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가족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가족에게 두려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또한 시대와 환경의 피해자였다. 영화는 그를 단순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고, 가정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낸다.
감독
론 하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대중 앞에 서는 일을 해왔다. 그는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1960년대엔 드라마 <앤디 그리피스 쇼>에서 아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청년 시절에는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조용한 청춘 역할로 등장하며 얼굴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그는 단지 카메라 앞에만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야기의 본질을 통제하고 창조하는 자리에 서고 싶었던 그는 곧 감독으로 방향을 틀었다.
감독으로서의 론 하워드는 오랫동안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추구해왔다. <뷰티풀 마인드>, <아폴로 13>, <러시> 등은 인간 내면의 균열과 회복을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물들의 숨겨진 고통, 그리고 극복의지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는 데에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거창한 장르보다, 인간 그 자체를 중심에 둔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힐빌리의 노래》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 스토리가 아니다. 미국 사회의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 이른바 ‘포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정치와 복지가 외면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론 하워드는 이 회고록을 접하고 나서, 그 안에 담긴 가족 간의 갈등과 헌신, 그리고 세대를 거쳐 이어진 상처를 영화로 그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이 이야기가 단지 미국 남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사회가 공감해야 할 ‘공통의 상처’라 여겼다.
또한 그는 작가 J.D. 밴스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책에 쓰이지 않은 가족의 구체적인 감정들을 영화적으로 옮기고자 했다. 론 하워드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특정 계층을 낙인찍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바로 그런 태도가 그의 연출 철학이다. 관객이 그 현실을 보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지향하는 감독의 역할이었다.
배우
에이미 애덤스 (Amy Adams) : 그녀는 이 작품에서 엄마 ‘베브’ 역할을 맡아 중독과 감정 기복에 휘둘리는 한 인간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에이미 애덤스는 선한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복잡하고 상처 많은 인물을 진중하게 표현해냈다.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에 인간적인 깊이를 부여한다.
글렌 클로즈 (Glenn Close) : 외할머니 ‘맘마우’ 역할을 맡은 그녀는 분노와 사랑이 공존하는 인물을 극도로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화장을 지우고 꾸밈없는 얼굴로 나선 글렌 클로즈는 현실에 지친 할머니의 모습을 진심으로 담아냈다. 이 배역은 그녀의 오랜 연기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가브리엘 바쏘 (Gabriel Basso) : 주인공 J.D. 밴스를 연기한 그는 절제된 감정과 진중한 눈빛으로 성장 서사를 그려냈다. 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청년의 내면을 조용히 표현하는 연기는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다.
헤일리 베넷 (Haley Bennett) : 누나 린지 역을 맡은 그녀는 소리 없이 가족을 지탱하는 인물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큰 드라마 없이도 그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며, 영화의 현실감을 더해주는 조연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녀의 연기는 따뜻함보다는 묵묵한 책임감을 강조한다.
프리다 핀토 (Freida Pinto) : J.D.의 여자친구 ‘우샤’ 역할을 맡은 그녀는 주인공의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감정적 균형을 제공한다. 그녀의 연기는 조용하지만 명확하며, 혼란 속에서도 주인공이 중심을 잃지 않게 돕는 존재로서 설득력을 갖는다. 서사의 외부에서 중심을 지탱한 배우다.
평가
이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엇갈린 반응을 받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지나치게 개인 서사에 집중해 구조적 빈곤 문제를 단순화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맥락보다 가족 간 갈등에 초점을 맞춘 점이 논란이 되었고, 감정에 호소하는 연출 방식이 다소 보수적인 메시지로 읽힌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연기력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이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글렌 클로즈의 연기는 혹평 속에서도 돋보였다. 그녀는 맘마우 역할로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같은 해 **미국 배우조합상(SAG Awards)**과 **영국 아카데미상(BAFTA)**에서도 후보로 지명되며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에이미 애덤스 또한 감정의 극단을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였지만, 평론가들의 평가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관객 반응은 비판적 시각과 달랐다. 넷플릭스 공개 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공감 간다”, “우리 가족 이야기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일부 시청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미국 내 빈곤층의 현실을 처음 인식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보여준 셈이다.
결국 이 영화는 완성도만으로 평가받기보다는, 사회적 배경과 시기, 그리고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의미가 갈리는 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수상과 비판을 동시에 끌어안으며,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담론을 대중의 눈앞으로 끌어낸 데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이 영화는 구원에 대한 환상을 정면으로 부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공하면, 그건 정말 ‘극복’일까. 아니면 일시적 탈출일 뿐일까. J.D.는 예일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다시 그 낡은 집으로 돌아간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뒤에 앉아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웃는다.
중독, 빈곤, 교육 격차. 모두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제도는 뚫려 있고, 복지는 누군가의 정치적 선전이 되며, 사람들은 각자 살길을 알아서 찾으란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꾸 화를 낸다. 서로에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운명에게. 하지만 누구도 바꿀 힘은 없다. 분노는 무력하다.
J.D.가 뭔가를 선택했다면, 그건 ‘도망이 아닌 견딤’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라 말하지만, 사실 자유는 고문에 가깝다. 책임은 전부 내 몫이고, 세상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J.D.가 할머니를 닮아가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조용히 보여준다. 거기엔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냥 살아남는 게 전부다.
결국 《힐빌리의 노래》는 한 인간이 어떻게든 망가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에 가깝다. 삶은 언제나 설명 불가능하고, 선택은 고립을 낳는다. 사르트르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옥은 타인이 아니라, 반복되는 가난 그 자체다.” 그리고 그 가난은 아주 조용하게, 세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