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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랜드 옆 동네 아동 빈곤과 방임의 현실

영화를 좋아하세요? 2025. 8. 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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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


들어가는 말

디즈니월드 바로 옆, 반짝이는 꿈의 뒷편에 아이들이 산다. 영화는 여섯 살 무니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녀의 세상은 모텔 앞 도로와 아이스크림 가게, 낡은 건물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니는 세상을 놀이처럼 받아들이지만, 어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녀의 엄마 헤일리는 직업도, 보호망도 없이 살아간다. 사회복지는 이 가족을 포착하지 못하고, 제도는 그저 그들을 구경할 뿐이다. 영화는 이 아이의 일상을 통해 방임과 빈곤이 어떻게 일상화되는지를 묘사한다.

그러나 감독은 그들을 피해자처럼 그리지 않는다. 무니는 밝고 자유롭지만, 바로 그 자유 속에 무너진 현실이 숨어 있다. 환상의 도시는 배경일 뿐, 영화는 그늘에 놓인 아이들의 삶을 더 가까이 보여준다.

 

줄거리

여섯 살 소녀 무니는 디즈니월드 인근의 낡은 모텔 ‘매직 캐슬’에서 산다. 그녀의 세계는 울타리도 경계도 없다. 친구들과 침대 위를 뛰어다니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동전을 구걸하며 하루를 채운다. 그녀는 세상이 전부 놀이터라고 믿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무니의 엄마 헤일리는 일자리도 없이 모텔비를 겨우 낸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향수 되팔이도 하고, 결국 몸을 팔기도 한다. 그녀는 사회로부터 밀려났고, 그 밀려남은 곧 아이의 삶까지 흔든다. 학교도, 의료도, 돌봄도 이들에게는 그림자처럼만 존재한다. 제도는 늘 너무 멀리 있고, 도움은 늘 너무 늦다.

모텔 관리인 바비는 이 아이들과 엄마들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는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면서도, 이들이 내쫓기지 않게 눈감아주는 사람이다. 직접적인 보호자는 아니지만, 바비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기대볼 수 있는 어른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 무기력한 한계에 다다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헤일리의 상황은 더 악화된다. 무니는 친구들과 다투고, 엄마는 모텔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인다. 결국 아동복지국이介入하고, 무니는 보호 시설로 이송될 위기에 처한다.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결정을 마주하게 된다.

무니는 마지막 순간 친구에게 달려가 울며 손을 잡는다. 그리고 두 아이는 디즈니월드를 향해 달린다. 카메라는 그 아이들의 등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상상인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는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었으니.

 

등장인물

무니 (브루클린 프린스)
무니는 여섯 살 소녀로,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디즈니월드 옆 모텔에서 살며 하루하루를 놀이처럼 보내지만, 그 속엔 현실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세상을 해맑게 바라보지만, 어른들의 무책임함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그녀는 순수한 시선으로 사회의 결핍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헤일리 (브리아 비나이트)
무니의 엄마인 헤일리는 젊고 거칠며 충동적이다. 정규직 일자리 없이 모텔비를 벌기 위해 온갖 불안정한 일을 하다가, 끝내 성매매로 내몰린다. 그녀는 딸을 사랑하지만 제대로 책임질 능력도, 여유도 없다. 무너진 제도 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현대 빈곤층의 얼굴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바비 (윌렘 대포)
모텔 매니저인 바비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웃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무니와 다른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되, 조용히 지켜보며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때로는 엄격하지만, 그 이면엔 따뜻한 책임감이 있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어른의 모습이다.

잔시 (발레리아 코토)
잔시는 무니의 가장 친한 친구다. 그녀 역시 모텔촌에 살며 비슷한 상황 속에서 자란다. 순수하고 조용한 아이지만, 무니와 어울리며 웃고 떠들 때면 세상의 무게가 잠시 사라진다. 아이들끼리 만든 그들만의 우정은 영화 속에서 가장 순수한 인간관계로 남는다.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안전함을 아이들이 서로에게서 찾는다.

애슐리 (메일라나 리버라)
잔시의 엄마인 애슐리는 헤일리보다 한 발짝 더 현실에 순응한 인물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지만, 여유라고는 없다. 헤일리와 달리 충동적이지 않지만, 구조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착한 사람도 가난해진다'는 현실을 조용히 증명하는 존재다.


 

감독

션 베이커는 1971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뉴욕대학교에서 영화와 TV를 전공했으며, 초창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의 영화는 화려한 장면보다 진실한 현실에 가까웠고, 꾸며진 서사보다 날것 그대로의 삶을 담는 데 집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2015년작 《탠저린》이다. 이 영화는 전부 아이폰으로 촬영되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성소수자 성노동자들의 삶을 다뤘다. 형식적으로 실험적이면서도, 인물에 대한 애정과 시선이 분명했고, 주류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션 베이커는 그로부터 ‘인디 영화계의 사실주의 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의 이러한 영화적 철학이 가장 단단하게 응축된 작품이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플로리다의 ‘모텔 홈리스’ 문제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디즈니월드 바로 옆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일종의 윤리적 충격이었다. 그는 이를 “미국식 환상의 가장자리에 선 사람들의 초상”이라 표현했다.

그는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를 영화로 재구성하면서,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적극 기용했다. 이는 진짜 삶의 질감을 화면에 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극적인 전개나 교훈 대신, 션 베이커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사회를 고발하지도,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묻는다. 이 아이들은 왜 이토록 외면당해야 하는가.

 

배우

브루클린 프린스 (Brooklynn Prince) : 영화의 주인공 무니를 연기한 아역 배우로,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폭넓은 감정 연기를 소화해냈다. 그녀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순수함과, 삶의 무게를 본능적으로 견디는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감정의 디테일과 자유로운 에너지가 돋보인다.

브리아 비나이트 (Bria Vinaite) : 무니의 엄마 헤일리 역을 맡은 브리아는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캐스팅된 그녀는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젊은 엄마의 현실을 거칠고도 진솔하게 연기했다. 꾸미지 않은 리얼함이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강화한다.

윌렘 대포 (Willem Dafoe) : 모텔 관리인 바비 역을 맡은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숙련된 배우로, 따뜻함과 냉정함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유지한다. 그는 사회적 역할과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발레리아 코토 (Valeria Cotto) : 무니의 친구 잔시를 연기한 발레리아는 낯선 상황에서도 자연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는 말수는 적지만 따뜻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아이로, 무니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대조되는 캐릭터로 극에 깊이를 더했다.

메일라나 리버라 (Mela Murder) : 잔시의 엄마 애슐리 역을 맡은 메일라나는 무표정 속에 피로와 단념을 감추고 사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그녀는 극단적 행동 대신, 삶에 묶인 여성의 내면을 조용히 드러내며 이 세계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를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평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실의 잔혹함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방식은 독창적이면서도 가슴을 울렸다. 미국 사회의 빈곤을 다루면서도 눈물이나 분노를 강요하지 않고, 조용하게 상황을 들여다보는 연출이 특히 주목받았다.

윌렘 대포의 연기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절제된 감정으로 따뜻한 인간성과 시스템의 냉정함 사이를 오갔다. 이 역할로 그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브루클린 프린스 역시 아역 배우로는 이례적인 수준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전 세계 영화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첫 공개된 이후, 토론토 국제영화제, 뉴욕 영화제 등에서 초청되며 인디 영화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무명의 배우들을 기용한 용기와 연출 방식은 ‘새로운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다만 일부 보수적인 시선에서는 지나치게 제도 비판에 머물렀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 평론가는 이 작품이 동정심을 자극하기보다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유지한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봤다. 영화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크고 묵직했다.

 

리뷰 후 실존주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에 대한 생각

무니는 웃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무서울 만큼 자유롭다. 아이는 현실이 얼마나 엉망인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른은 안다. 이 세계가 아이에게 아무것도 줄 생각이 없다는 걸. 보호도, 기회도, 심지어는 희망조차도.

그 세계에선 선택할 자유만 주어진다. 단,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의 몫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 영화는 그 자유가 얼마나 끔찍한 형벌인지 조용히 보여준다. 태어날 때부터 모텔에 사는 무니에게 ‘다른 선택’이란 건 애초에 주어진 적이 없다.

어른들은 파편처럼 흩어진다. 누군가는 매니저가 되고, 누군가는 성매매에 내몰린다. 제도는 그들을 돕지 않는다. 단지 구경하거나 침묵할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선택 위에 놓이고, 그 선택이 무너질 때마다 같이 무너진다. 무니는 울지만, 세상은 아무 반응도 없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그게 더 잔인하다. 우리는 그 아이를 구하지 못한 채, 관람만 하고 지나친다. 사르트르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세계에 갇힌 존재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아이는 가장 먼저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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