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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자의 줄거리, 상징성, 명장면

by 영화를 좋아하세요? 2025. 3. 27.

순응자(Il Conformista, The conformist, 1970)
순응자(Il Conformista, The conformist, 1970)

개요

순응자(Il Conformista, The conformist, 1970)는 1930년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하, 개인의 내면과 정치적 억압을 다룬 심리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정체성 혼란 속에서 "평범한 삶"과 "정상성"을 갈망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회에 순응하기 위해 파시스트 정부의 비밀경찰에 협조하고, 정치적 신념보다 체제에 순응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영화의 줄거리

 

영화는 마르첼로가 대학 시절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은사 쿼드리 교수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의 신혼여행을 위장하여 아내 지울리아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고, 파리에서 쿼드리 교수와 그의 젊고 매력적인 아내 안나를 만나게 됩니다. 마르첼로는 쿼드리를 감시하면서도 동시에 안나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고, 자신의 억압된 욕망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적 갈등에 흔들립니다.

결국 그는 명령에 따라 쿼드리 교수를 배신하고, 안나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비극적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파시즘 정권이 무너진 뒤, 마르첼로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순응했는지를 되돌아보며 공허함과 죄책감에 직면합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나약함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 그리고 개인적·정치적 억압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과정을 심도 깊게 그려내며, 심리적 내면과 시대적 배경이 절묘하게 맞물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순응자의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는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순응(conformity)’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불안, 그리고 파시스트 체제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신념, 심지어 정체성마저 억누르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르첼로는 스스로 ‘정상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 정상이라는 기준은 오히려 사회가 강요한 왜곡된 가치관이다. 어린 시절 동성 성적 경험과 가정 내 폭력, 아버지의 광기 등은 그에게 개인적 죄의식을 남기고, 이후 파시즘이라는 집단주의적 체제에 스스로를 던져 죄의식을 덮으려 한다.

그의 아내 지울리아는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경쾌하지만, 내면은 공허하고 체제에 아무 비판 의식 없이 안주하는 전형적 소시민으로 묘사된다.
반면, 마르첼로가 암살해야 할 대상인 콰드리 교수와 그의 아내 안나는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다. 특히 안나는 마르첼로가 억압해온 성적 욕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마르첼로 내면의 혼란과 충돌을 극대화시킨다.

 

영화의 상징성

 

순응자는 개인의 내면과 파시스트 체제의 폭력성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형식적으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주요 상징들은 다음과 같다.

빛과 그림자 : 영화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명암 대비는, 마르첼로 내면의 분열과 억압된 욕망, 그리고 체제의 폭력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인물들은 종종 빛과 어둠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는 도덕적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마르첼로의 심리를 상징한다.

건축과 공간 : 영화 속 공간들은 대체로 대칭적이고 차갑다. 로마의 파시스트 건축물, 넓고 비인간적인 공간은 개인의 자유와 감정을 억압하는 체제의 구조적 폭력성을 드러낸다.

눈과 시선 : 영화 내내 마르첼로는 '보는 자'이자 '감시당하는 자'로 존재한다. 그는 체제의 명령을 수행하며 타인을 관찰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시선과 자기 검열 속에 스스로를 감시한다.

 

명장면 해석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숲 속 암살 장면이다.
마르첼로는 교수와 안나를 추적하여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그는 차 속에 앉아 암살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안나가 숲 속을 달리며 구원을 외치고, 마르첼로는 차 안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그의 수동적 폭력성과 순응자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직접 총을 들지는 않지만, 체제의 폭력에 동조하는 자의 방관과 책임이 어떻게 희생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또 다른 명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무솔리니 정권이 몰락한 이후, 마르첼로는 로마 거리에서 과거의 동성애적 경험 상대였던 리노와 재회한다. 마르첼로는 그에게 과거의 죄와 억압의 원인을 떠넘기려 하지만, 결국 남겨진 것은 자신의 허무와 정체성의 붕괴뿐이다. 이 장면은 그가 평생 쌓아올린 ‘순응’이라는 가면이 체제의 몰락과 함께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순응자는 단순한 정치 스릴러가 아니라, 개인의 억압된 욕망, 죄의식, 그리고 권력 체제에의 복종이라는 심리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풀어낸 영화다. 마르첼로라는 인물의 심리적 균열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고 폭력에 동조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 심리학적 초상이다.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통해 정치적 폭력이 내면화되는 과정을 냉정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며,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