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저항《트리스타나》(Tristana, 1970)는 여성의 내면적 각성과 사회적 저항을 다룬 영화로, 억압적 가부장제 속에서 주체로서의 여성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트리스타나는 후견인 로페의 보호라는 명목 아래 성적, 정신적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 사랑, 상실, 육체적 장애를 겪으며 기존 질서에 순응하던 태도를 거부하게 된다. 루이스 부뉴엘은 트리스타나의 변화 과정을 통해 당시 여성 억압의 현실을 조명하고, 억압적 구조를 내부로부터 흔드는 상징적 저항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여성의 일대기를 넘어, 20세기 중반 유럽 사회의 여성 해방 운동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줄거리《트리스타나》는 젊고 순수한 여성 트리스타나가 보호자이자 후견인인 돈 로페의 집에..
영국의 느와르《겟 카터》(Get Carter, 1971)는 범죄 영화를 통해 영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범죄조직, 부패한 상류층, 붕괴된 가족 구조 등을 통해 산업화 이후 잉글랜드 북부 도시의 황폐한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주인공 잭 카터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폭력 구조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상징으로 읽힌다. 마이크 호지스는 갱스터 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사회적 분열과 도덕적 붕괴를 끼워 넣는다. 《겟 카터》는 폭력의 미학을 넘어서, 범죄 영화가 사회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줄거리잭 카터는 런던의 냉혹한 갱스터로, 동생 프랭크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뉴캐슬로 향한다..
독일의 철학 영화《롤라 런》(Lola rennt, 1998)은 독일 철학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자유의지와 결정론, 우연과 필연의 문제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절대적 개념을 반복과 변주의 구조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선택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하이데거와 니체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존재와 결단,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롤라가 처한 20분이라는 시간 제약은 실존적 위기의 압축된 상징으로, 그 안에서 인물은 반복과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바꾸어 간다. 줄거리영화는 붉은 머리의 젊은 여성 롤라가 남자친구 마니의 위기 상황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마니는 범죄 조직의 돈 10만 마르크를 전철에 두고 내리..
유럽의 로맨스 뮤지컬《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4)은 프랑스 북서부의 소도시 쉘부르를 배경으로, 젊은 연인 간의 순수한 사랑과 그 엇갈림을 뮤지컬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는 독특한 형식은 이들의 감정선을 더욱 섬세하게 전달하며, 엇갈린 사랑의 아픔과 인생의 덧없음을 음악과 색채 속에 담아낸다. 자크 드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로맨스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시적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줄거리1960년대 프랑스 북부 도시 쉘부르. 우산 가게에서 일하는 열일곱 살 소녀 쥬느비에브는 자동차 수리공 기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밤하늘 아래 미래를 약속하며 함께할 날들을 꿈꾸지만, 갑작스러운 소집으로 인해 ..
홍콩 영화의 부흥1972년 개봉한 《정무문》(精武門, 1972)은 이소룡의 폭발적인 등장과 함께 1970년대 홍콩 무술 영화의 부흥을 이끈 대표작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을 넘어, 중국 한족의 항일 정서를 진한 감정선과 함께 풀어내며 관객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당시 홍콩 사회는 식민지적 정체성 혼란 속에 있었고, 《정무문》은 민족 자존심을 일깨우는 통로가 되었다. 이소룡 특유의 리얼한 액션과 강렬한 메시지는 홍콩 무협 영화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세계 영화 시장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줄거리191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무술 도장 ‘정무관’의 제자인 진진이 스승 화윤갑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스승이 병사했다는 일본 측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진진은 그의 죽음에 의..
《마루사의 여자》(マルサの女, A Taxing Woman, 1987)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법과 도덕의 경계를 흔드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타미 주조 감독은 세무조사라는 생소한 세계를 통해, 이윤 추구가 중심이 된 사회에서 도덕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이타코는 탈세 혐의자를 쫓는 과정에서 인간 내면에 자리한 회피와 탐욕, 그리고 그 이면의 불안정한 윤리를 목격하게 된다.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탈세라는 범죄를 넘어, 그 근본에 깔린 구조적 병폐를 드러낸다. 《마루사의 여자》는 단순한 수사극이 아닌, 자본주의가 낳은 갈등의 현장을 조용히 응시하는 사회적 성찰의 영화다. 줄거리이타미 주조 감독의 1987년 작품 《마루사의 여자》는 일본의 세무조사관이라는 독..